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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계2025.02] 균형과 원칙을 지키는 파격

월간인쇄계 2025. 4. 16. 09:00

 

태시스템과 대표님에 대한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저는 연세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한국IBM에서 엔지니어 생활을 하다가 미국 뉴욕시립대학원에서 컴퓨터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미국 전자출판 관련 기업에서 처음으로 맡았던 업무가 뉴욕 세계일보 전산조판시스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기업에서 글꼴 디자인을 하고 있었던 김태수 디자이너를 만나서 본인이 디자인한 폰트의 엔지니어링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고, 두 사람 이름에 같이 들어있는 글자를 따서 ‘태시스템’으로 사명을 정하고 함께 일을 시작했습니다. 

뉴욕에서 거주하면서 폰트를 디자인하는 김태수 디자이너 외에 디자인을 맡아 줄 사람이 필요했고, 최정호 선생님께 원도 도안을 배우고 당시 수동식 제판 분야에서는 충무로에서 가장 뛰어난 장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계셨던 김화복 선생님을 대표 디자이너로 영입해서 본격적으로 태시스템의 폰트를 제작,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90년대 초반에는 한글 폰트를 만드는 툴이 없었고, 폰토그라퍼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했는데 256자 이상의 글자를 만들 수 없었습니다. 

한글은 2,350 글자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여러 곳을 수소문하다가 제가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트루타입 폰트는 한메소프트와 창인시스템의 도움을, 포스트스크립트는 신명컴퓨터의 도움을 받아서 폰트 제작 툴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기술적인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된 뒤에는 판로를 찾아야 했습니다. 이때 아래한글에 기본으로 탑재한 ‘태-나무체’와 휴먼컴퓨터에서 판매한 ‘모음체’, ‘조각체’ 그리고 매킨토시용이었던 소프트매직의 ‘계유자체’, ‘갑술자체’ 등을 제작, 판매했습니다.

당시에 폰트를 직접 판매하지 않았음에도 폰트 비즈니스를 이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업체들이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들 때마다 저희 폰트를 기본 라이센스로 탑재했기 때문입니다.

코렐에서 개발한 영문 워드 프로세서 워드퍼펙트가 국내에 처음 들어왔을 때도 태시스템의 폰트를 기본으로 라이센스하고, 핸디소프트와 아래한글, 휴먼컴퓨터, 한메소프트에서도 기본 폰트로 탑재할 정도로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이후, 한메소프트와의 합병과 대기업 투자를 받은 뒤 IMF 사태로 인해 부침을 겪는 과정을 겪으면서 대기업 스타트업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업 수행 와중에도 디자인된 글꼴을 하나씩 폰트 파일로 만들었고, 2003년경 다시 태시스템 사업자 등록을 하고 한겨레신문사의 인쇄용 글꼴 ‘한결체’를 만들고, 이전에 만들었던 글꼴들을 모아서 패키지 ‘The Font 2008’, ‘2010’을 발표했습니다.  

태시스템 글꼴 2010 설치 패키지[자료출처_e뮤지엄, emuseum.go.kr]

보다 활발하게 활동하고자 했지만, 많은 방송국과 광고, 인쇄물에 ‘태-영화체’를 비롯, 저희가 만든 폰트를 비슷하게 그린 폰트가 사용되는 것을 보게 되면서 글꼴의 대중 판매를 중지하고 주문하는 곳의 일만 작업하기로 했고, 2016년에는 전주시 공식 글꼴인 ‘전주 완판본체’를 만들고, 2018년에는 전북일보의 고유 폰트를 제작했습니다. 

92년 태시스템에서 설립 이후 폰트를 만들고 선보이면서 지켜왔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처음에 태시스템에서 폰트를 선보였을 때는 파격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당시 대부분 사용하고 있던 명조, 고딕, 헤드라인, 궁서와 같이 도안을 글자로 옮긴 스타일의 기본 폰트가 아니라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태-나무체를 사용하기 위해 아래한글을 구매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시장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윗쪽부터) 태-나무체, 태-소하체

항상 사람들이 손으로 만든 글자가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소하선생님의 붓글씨를 받아서 제작한 소하체와 예쁜 손글씨 공모전 수상작들을 폰트로 제작한 오이, 가지, 복숭아, 딸기, 옥수수체국내에서 처음으로 기획했던 연예인 손글씨와 같은 다양한 시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시장에 출시되는 폰트들이 많아지면서 원칙있는 균형있는 파격이라는 기준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을 이어왔습니다.

또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써 글자와 문서, 정보 통괄하는 있는, 통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글자를 만들자는 모토를 지향해 왔습니다. 

태시스템에서 선보인 주요 폰트에 대해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1994년 이후 10년간 한국 외화 자막시장을 거의 100% 차지했던 ‘태-영화체’는 고딕, 명조, 나루체, 손글씨 등 여러 종의 폰트를 표본으로 수동 자판도 써보고 인화지도 바꿔가면서 개발까지 4개월의 시간이 걸렸던 태시스템의 대표 폰트 가운데 하나입니다. 

태-영화체 이전에는 ‘필경사’라는 분들이 직접 손글씨로 자막을 만들었는데, 부드럽고 글자의 질을 고르게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출시 이후에는 모든 외화 자막의 대명사가 되었고, 2002년부터 레이저 자막이 도입되어 다른 폰트들도 자막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사용되었으며, 최근에는 수 많은 유튜브 콘텐츠와 CF, 뮤직비디오 등에도 활발히 쓰여지고 있습니다. 

영화 자막 작업을 하면서 ‘태-영화체’를 활용해서 초기의 동판 부식 방식에서부터, 레이저, 디지털 방식까지 3세대의 기술 변화 과정에서 해당 작업 하시는 분들에게 기술적인 부분을 배우면서 작업했는데,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기 때문에 자부심도 컸던 작업이었습니다.  

태-나무체는 평생 붓과 먹으로 글자 원도를 그려오신 대표 디자이너 김화복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컴퓨터로 작업해서 완성한 글꼴 가운데 하나로, 출시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아래한글 2.5에 기본 번들로 탑재된 뒤에 문방사우와 아리랑, 일사천리, 파피루스, 워드퍼펙트 등 수많은 워드프로세서와 전자출판 프로그램에 기본 번들로 제공되었습니다. 

지금도 태폰트 공식 폰트스토어인 thefont.kr을 통해서 꾸준히 판매되고 있습니다.

 

더폰트

태시스템 폰트 판매스토어 - 더폰트

thefont.kr

오이, 가지, 복숭아, 딸기, 옥수수체는 90년대 중반 한글과컴퓨터와 함께 열었던 예쁜 손글씨 공모전 수상작들을 디지털화해서 폰트로 제작한 것으로, 당시에는 일반인들의 손글씨를 폰트로 만드는 일은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빚어내는 아름다운 필체보다 더 좋은 글꼴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후에도 꾸준하게 붓글씨와 펜글씨 등을 가지고 폰트를 만들었습니다.

예전에는 여러 국내 학습 참고서 출판사들이 샤켄 전산 사식 장비를 사용했는데, 당시 출판사들이 사용했던 수식 편집에 사용했던 기호 가운데 초등학교 산수 교과서에 사용된 숫자들은 저희가 제작했던 원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태-산수둥근고딕’으로, ‘태-둥근고딕’과 함께 지금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태시스템은 국내 전국일간신문들의 본문 활자와 다양한 출판용 폰트를 제작했습니다. 

탈네모꼴 글꼴의 현대적 원형을 찾을 수 있는 안상수 선생님의 글꼴을 시작으로 여러 디자이너들이 탈네모꼴 글꼴을 선보였지만 인쇄용 신문의 폰트는 탈네모꼴의 벽을 넘기 어려웠습니다. 

2005년 5월 한겨례 창간 17주년을 맞아 출판한 기념호에서 선보인 ‘한겨례결체’는 그 벽을 처음으로 넘어선 의미있는 시도였습니다.  

한겨례결체의 획의 마무리 디자인과 기본 형태는 시각디자이너인 글씨미디어 홍동원 실장의 손을 거쳤고, 모든 글자를 직접 그리고 조형과 균형을 함께 하는 작업은 한국일보의 신문 글꼴을 개발했던 김화복 대표 디자이너가 맡았습니다. 

글자의 높낮이가 글자마다 가변적인 탈네모꼴 글꼴인 ‘한겨례결체’는 신문 본문 글꼴이 윗선 맞춤으로 만들어진 당시에는 파격적인 형태였으며, '한겨례결체'와 함께 사용된 '한결제목체'에서는 글자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넓이 값을 가지게 되는 실험적인 시도를 진행했습니다. 

2005년 10월 한글날을 맞아서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무상으로 공개되었으며, 이후 다른 대형 신문사들도 자사의 글꼴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해서, 한겨례신문은 신문 글꼴을 공개한 최초의 신문사가 되었습니다.  

프로그래머로써, 다양한 폰트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 작업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개발해서 내부적으로 트루타입으로 제작된 폰트를 OTF폰트로 만들때 사용하고 있는 폰트 에디터 외에도 한글과컴퓨터사의 요청으로 한컴에서 처음 만들었던 윈도우용 아래한글 메뉴에 들어가는 시스템 폰트를 비트맵 폰트로 제작하는 작업은 미국 신문사에 일할 때 비트맵 폰트로 에디터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태-영화체’로 영화 분야와 일을 하게 되면서 영화 자막 편집용 소프트웨어와 영화 번역에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일본 샤켄사의 호환 장비 글꼴과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2009년 말 국내에 아이폰이 출시된 이후에는 동아출판사와 같이 학습 참고서 출판사들과 함께 전자사전 영한 사전, 한영사전 디지털로 나온 거 있죠 맥용, 아이폰용 또 안드로이드용 기본 엔진 안드로이드용 최종 제품 등의 앱을 개발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 부탁 드립니다.

Cylogic이라는 이름으로 브런치스토리 사이트에서 글을 쓰면서 구독자들과 폰트와 움직이는 장난감 등에 대해 소통하고 있는데, 올 가을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는 디지털 장비를 가지고 장난감 만드는 것과 관련된 책을 완성한 뒤에는 꾸준히 폰트 관련 글을 게재해서 소통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Cylogic의 브런치스토리

개발자 | Cylogic의 글꼴, 움직이는 장난감 그리고 소프트웨어 개발.

brunch.co.kr

 

또한, 새로 만들어 놓고 발표하지 않은 80여 종의 폰트와 중소 신문사 같은 곳에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신문사용 폰트 4종 세트를 어떤 방식으로 공개, 유통하면 좋을지 여러 분들과 논의하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장에서 폰트 자체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익성은 크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부가 상품을 만들거나 채널 다변화를 통해서 뭔가 의미있게 사용될 수 있도록 해 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