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쇄업계의 화두 중 하나는 제품 차별화를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 개발로 이를 위해 다양한 미디어와 후가공 장비가 개발, 시장에 출시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분야는 바로 디자인이다. 그 중 글자의 모양인 서체는 일찍부터 조형미가 추구되어 각종 장식서체나 필체가 아름다운 서체, 폰트로 만들어지고 현재 디자인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활용되고 있다.
국내 폰트 시장의 이슈 중 하나는 바로 폰트의 제한적인 사용이다. 장기간에 걸쳐 개발된 높은 완성도의 폰트 구매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어 국내폰트업계의 발전에도 저해가 되고 신선하고 차별화된 디자인을 구상하는 소비자들 역시 제한적인 폰트 사용으로 이를 구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월간 인쇄계는 2014년 기획으로 폰트 디자이너들의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각 폰트사의 특징을 알아보고 국내 폰트 산업 트렌트를 함께 살펴본 후, 인쇄와 웹, 싸인, 모바일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성공적으로 활용된 폰트 활용 사례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다섯번째 폰트 디자이너 릴레이 인터뷰에는 계원예술대학교 이용제 교수가 국내폰트업계의 트렌드와 현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밝혔다.
Q 활자공간에 대한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A 1998년 설립된 ‘한글디자인연구소’에서 2004년 분리된 ‘활자공간’은 모바일과 기업, 위성 디지털 TV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는 폰트 제품을 제작해 왔습니다. 이와 함께 타이포그라피 잡지 ‘히읗잡지’를 발간하고 있으며 활자와 타이포그라피, 인쇄 등의 강의를 진행하는 ‘히읗학원’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제작 활동을 조금 줄이고 있습니다.
Q 제작 활동을 왜 줄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A 개인적으로 현재 활자와 편집디자인, 타이포그라피 업계가 그렇게 건강한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고 낮은 품질의 폰트가 양산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에 저까지 함께 해야하나 의문이 든 것이죠. 그런 생각에 조금씩 변할 수 있으려면 젊은 친구들이 적어도 어떤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아래 학교와 ‘히읗학원’에서 교육 활동을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론에서 역사, 쓰임 등을 교육하고 있는 제가 그와 맞지 않는 엉뚱한 것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생각 아래 몇년 전부터 제작을 줄이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저도 단가에 맞춰주고 고객이 빨리 만들어 달라하면 맞춰 제작해주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것이 제 안에서 부딪히다 보니 조금 자제를 하고 있는 것이죠.
때문에 제작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업체와 비교해서는 매우 적고 제작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최근에 비즈니스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가 조금은 조심스럽네요.
Q 홈페이지에서 리빙과 의류, 문구소품 등 글자를 활용한 제품이 판매되고 있는데 이를 운영하시는 배경이 궁금합니다.
A 상품이 다양하지는 않고 제작을 하게 되면 비용이 큰 단위로 움직이다 보니 기껏해야 소소히 만들 수 있는 가방과 버튼 등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제품의 라인업을 형성해서 라이프 스타일을 이끌어 내겠다 그런 개념은 아닙니다.
바라는 것은 글자로도 일상적인 생활용품에서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많이 만들수는 없으니 저희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노출을 할려고 하는 것이죠. 이를 본 분들이 ‘글자를 가지고도 저렇게 디자인을 할 수 있네’, ‘이런 제품은 가지고 다닐 수 있겠다’ 등 생각을 가지고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차원에서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글문화연대에서 한글 정신을 알리기 위해서 1년에 한두번 한글티셔츠를 제작하고 하는데 이러한 곳은 디자이너가 중심이 되어 움직이는 곳이 아니라 대부분 국어학자와 언어학자 분들이 중심이 되고 있죠. 이에 디자인이 필요하면 대부분 기부를 받아 진행을 하고 있는데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소위 디자인을 잘하시는 분들은 너무 바빠서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야 같이 참여할 기회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글을 가지고 하는 디자인 작업들을 보면 비슷한 양식이 나오고 있다고 봅니다. 이에 제가 디자이너다 보니 그런것과는 다른 것이 나왔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에서 진행하고 있는 면도 있습니다.
Q 최근 인쇄 업계 경기가 침체되면서 타개책으로 차별화가 강조되고 있고, 그중에서도 디자인, 폰트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고 생각하는데 교수님께서는 어떠한 의견을 가지고 계십니까.
A 사실 문제가 되는 것은 차이가 없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급화라는 것으로 차별을 주고 다른 소재, 하이테크 방법을 동원해 한다든지 반대로 수작업을 한다든지 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하는데 실상 그 안을 보면 두려움이 많은 것 같다고 봅니다. 단편적으로 세로쓰기와 가로쓰기가 있죠. 세로쓰기를 하면 디자인을 하는 사람부터 ‘세로쓰기로 해도 돼?’ 라고 합니다. 안될 이유는 없지 않은가요? ‘사람들이 불편해 하지 않을까’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소설 책의 모든 내용을 다 세로쓰기로 하자는 것이 아니라 제목에서 한 단락을 세로로 쓴다 해서 사람들이 불편해 할까요? 과연 못 읽을까요?
이러한 부분에서도 의식의 장벽이 공고한데 그런 가운데에서도 무엇인가를 바꾸고 싶어합니다.
때문에 할 수 있는 범위가 좁고 한계가 있는 것이죠. 과연 지금의 체제를 다 유지하면서 뭔가가 달라야 한다고 하는 관점에서 보면 그 방안은 많지가 않습니다. 디자인 스타일이 계속 돌고 도는 것이지 기본적 제작방향 소위 디자인 철학이 하나도 바뀌지 않으면서 욕구는 달라지고 싶어한다라. 그렇게 해서는 충족할 수 없습니다.
그러고 나니 소비자에게 과연 무엇을 어필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라고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즉 그것이 무엇인지부터 말하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은지를 정하고 난 후 디자인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 이를 물으면 가독성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기본적이라고 치지만 가독성이 좋은 것은 어떤 조건인가라고 하면 뭐라 대답할 것인가. 가로쓰기? 본문은 무슨 체로 써야한다? 그들이 답하는 것을 엄격하게 지키는가 하고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 정도 하면 무난하게 넘어가겠다 정도이지요.
그들에게 정말로 바꾸고 싶어할만큼의 의식과 의지가 있는지를 묻는다면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생존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바꿔야 할것은 같은데 무엇을 바꿔야 할지 모르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때문에 먼저 사장님부터 생각이 열려야 하겠죠. 열린다는 것은 ‘마음대로 해’가 아니라 가치관, 지향점 등이 먼저 전제가 되고 그것을 디자이너, 에디터가 잘 받아들이고 적절한 표현방법을 찾아야 하겠죠. 그 과정에서 폰트가 이런것이 좋겠다가 되어야 하는데 방향이 안 정해진 상태에서 막막하게 바꿔야 한다고 하니 단순히 새롭게 생기는 폰트가 좋게 보이는 것이죠. ‘이거 처음 본다’, ‘신기하다’, ‘달라보인다’ 정도의 수준밖에 안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새로움에 집착하는 편은 아닙니다. 일단 새로 만드는 것도 이를 활용하는 것도 방향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때문에 학생들에게 교육을 할때도 다를려고 다른 것을 만들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 〈바람.체〉〈바람.체〉는 옛 한글 활자를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닌, 옛 활자를 ‘재해석’하여 전통을 잇되 지금의 활자와 다른 ‘그 무엇’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포스터 『혼돈』에 세로쓰기용으로 〈바람.체〉를 그렸고 문장부호 그리고 할주를 이용한 표현을 시도했다. ‘전시’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자연스럽게 개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디자인했고, 결국 제목용에 가까운 활자를 그렸다. 그러나 가로쓰기 세대인 제작자에게 세로쓰기는 낯설었고, 세로쓰기용 활자의 균형은 학습을 통해서만 익힐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참고했던 활자로, 〈바람.체〉의 점과 획은 붓으로 쓴 해서체 양식의 〈최지혁체(1882)〉의 영향을 받았고, 글자의 골격은 〈박경서체(1930경)〉의 영향을 받았다. 굵고 가는 줄기의 변화는 한자 폰트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이원모체(1933)〉의 형식을 빌려왔다. 또한 세로획이 굵은 〈바람.체〉를 전각 안에 넣기 위해서, 〈이남흥체〉의 획의 굵기 변화를 참고했다.〈바람.체〉는 세로쓰기를 기준으로 30~60포인트 크기 사이에서 아름답게 보이도록, 글자의 중심과 균형, 그리고 획 굵기를 맞췄다. 가로와 세로 획의 굵기 차이가 커서 긴 글에 쓰기는 적당하지 않고, 낱말이나 짧은 글 정도를 써야 할 것 같다. 오프셋인쇄를 해보면 복잡하지 않은 글자의 경우 12포인트까지도 쓸 수도 있지만, 최소한 20포인트 이상은 돼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난뒤에 글자들의 무게와 힘, 농도를 더 비슷하게 보이도록 다듬어야 할 것이다.
Q 마지막으로 추가적으로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으신지요.
A 업계가 건강하게 잘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의 역할이 필요한 것인데 생존의 문제가 결부되다 보면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이 안될 때가 많은것 같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게 맞는데 생존의 문제가 걸리게 되면 소위 대세, 흐름에 편승하게 되는 것이죠. 사실 이러한 상태이기 때문에 지향점이 있어서 조금씩 조금씩 가자고 하면 그래도 좋은 것이죠.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찾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라고 말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겠죠.
개인적으로 그런것을 안 좋아해서 대안으로서의 대안, ‘몰라서 안하나? 안해서 못하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의 역할에서 삶의 현실적인 문제와 자기가 바라는바의 괴리감을 얼마만큼 줄일 수 있는가 하는것은 그 사람의 의지와 의식에 따라 결정되는 부분이니까요. 그 정도만 조금 더 신경쓴다면 더디더라도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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