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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계2014.02] Contribution-동방사

_컬럼_

by 월간인쇄계 2014. 5. 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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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4일 19시 15분에 동인회 오창관 회장외 15명이 아홉 번째 해외 나들이로 라오스(Laos)를 가기 위해 LJ015편으로 인천공항을 출발, 5시간 40분 동안의 비행을 통해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 국제공항에 도착해 시내의 Doung Pra Seuth Hotel에 여장을 풀었다. 라오스의 정식 명칭은 라오인민민주공화국(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이며, 국토 면적은 236,800km²이고 남한의 2.5배이다. 인도차이나반도 중심부의 내륙을 중심으로 길게 뻗어있어 인도차이나 반도 국가들 중 유일하게 바다가 없는 국가이다. 국토의 75%가 푸른 숲으로 덮여 있고, 북쪽 산악지대와 남쪽의 평원을 메콩강이 1,500km나 흐르고 있으며, 북서쪽은 미얀마와 중국, 동쪽은 베트남, 남쪽은 캄보디아, 서쪽은 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인구는 2012년 기준 47개 종족에 약 800만 명이며, 1개 자치구와 도가 있고 16개의 주가 있다. 수도는 자치구인 비엔티안이다.

1353년 크메르왕국의 지원을 받고 메콩강 유역에 란쌍(Lan Xang) 불교왕국을 건국했으며, 1828년 태국에 멸망해 태국과 베트남의 지배를 받다가 1860년 프랑스 침략으로 메콩강 동쪽을 태국으로 인수한 것이 지금의 라오스 국경이다. 1954년 독립해 입헌군주국이 되었으나 우파, 중립파, 좌파의 갈등으로 내전이 장기간 지속하다가 1975년 공산국가가 되었으며 언어는 라오어와 프랑스어나 공용이며 태국어, 영어, 베트남어를 사용한다. 또한 국민의 95%가 소승 불교로 문화의 핵심을 이룬다.

소박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방비엥을 구경하러 100km를 자동차로 약 4시간을 달려가며 본 주위의 풍경은 우리나라의 1960년대 모습으로 한적하고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모습이었다. 먼지가 나는 길거리에서 털을 제거하지 않은 돼지고지를 팔고 있었는데 시외버스가 정차하더니 사람들이 고기를 사고, 다시 버스를 타고 가는 모습이 신기했다. 휴게소 근처를 한국기업이 조성한 단지인데, 태극기와 이정표를 세워 기증한 나라의 표시를 하고 있었으며, 여러 나라의 원조로 개발되고 있었다. 방비엥은 카르스트지형 특성상 특이한 모양의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으며, 수 많은 동굴이 분포되어 있고 쏭강의 맑은 물이 풍부해 프랑스 식민지 때 휴양지로 개발되어 아름다운 경치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또한 중국의 계림과 닮았다고 하여 소계림이라 불리워진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물놀이를 위한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트럭을 개조해 만든 차쌩때우를 타고 30여분 거리에 있는 탐쌍(Tham Sang) 동굴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간단히 도시락을 먹고 고무 튜브를 타고 밧줄을 손으로 잡고 머리에는 헤드 랜턴을 켜고 누워서 깜깜한 동굴 안으로 들어가니 두 곳의 넓고 높은 공간이 있었으며, 여러 모양의 종유석들이 있었는데 머리가 세 개 달린 흰코끼리를 비롯해 원숭이, 개구리 등 다양한 동물의 형상이 있었다. 동굴길이는 250m 정도이며 깊이는 1m 정도인 이 동굴은 방비엥의 대표적인 동굴이다.

여기서 5km여의 거리를 카누를 타고 호텔까지 오는 중에서 많은 관광객이 튜브를 타고 연인과 또는 친구, 가족간에 한가로이 물놀이 하는 모습이 좋았으며, 물가에서 댄스 파티 하는 것도 많았다. 산과 물이 어우러진 좋은 휴양지이다.

그리고 우리는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으로 가기 위해 어제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비엔티안은 메콩강변에 위치한 라오스 최대도시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며 인구는 약 550,000명이다. 라오스 사람들은 비엔티안을 ‘위앙짠’이라고도 부른다. 라오스말로 ‘위앙’은 도시이고 ‘짠’은 달, 또는 강한 향이 나는 나무인 ‘백단향’을 뜻해 ‘달의 도시’또는 ‘백단향의 도시’라는 뜻이다. 이 도시는 아시아와 유럽의 문화가 잘 조화되어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간직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며, 아직 버스나 택시같은 대중교통이 보편화 되어있지 않다.


 

비엔티안에는 약 80개의 고대불교 사원이 있었으나 1828년 태국 ‘시암’ 왕국 침공에 파괴되어 현재는 20여개가 남아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곳은 1556년 건립된 수백킬로그램의 금박이 입혀져 있는 ‘탁 루앙(That Luang)사원’이다. 40년 전통 쌀국수집을 안내했는데 사람들이 무척 많았으며,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하고 시내 관광을 시작했다.

왕실사원 왓 호파케우(Wat Haw Pha Kaew)사원은 1565년 세타티랏 왕이 비엔티안으로 천도할 때 란나 왕국에서 가져온 에메랄드 불상을 모셔 놓았던 사원이 1828년 태국 침략에 약탈 되었고, 현재 불상은 프랑스령시절 복원해 각종 유물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
왓 시사켐(Wat Sisaket) 사원은 1818년 아누뽕 왕이 건립했다. 6,840개의 불상을 모셔 라오스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난 요일의 불상에 불공을 드리는 신선한 사원이다. 태국군대가 이 사원을 파괴하면 전쟁에 진다는 우려로 사원은 파괴하지 않았으나 많은 불상의 목을 잘랐다고 한다. 라오스 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셋타티랏 왕의 동상이 있다. 독립기념탑(Patuxay) 광장에 프랑스 개선문 모양으로 미국의 활주로 공사자재인 시멘트로 만들었으며, 독립문 전망대는 건물 7층 높이로 전 시가지를 한눈에 관람할 수 있으며 라오스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다.

유네스코 지정도시인 루앙프라방은 비행기로 약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해발 700m의 도시인 루앙프라방은 라오스 최초의 통일왕국인 란상(Lan Xang) 왕조의 수도이며 인구는 63,000명이고 시내 곳곳에 30개의 사원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으며 프랑스 건물과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Sunway Hotel에 여장을 풀고 소수민족인 몽족의 쇼를 관람하면서 식사를 마치고 야시장에서 공예품을 구경했는데 나무 무늬가 특이한 것을 보아 손녀의 선물로 골랐다.

다음날 700년  이어져 내려온 탁발공양을 보기 위해 아침 5시에 일어나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착했는데 많은 관광객들이 모이고 있었다. 태국이나 동남아 불교국가에서도 아침 일찍 정성스런 음식을 스님에게 먼저 공양하는 풍습은 마찬가지이지만 이 곳은 스님들이 공양 받은 음식을 가난한 이웃에서 다시 시주하는 나눔의 풍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루앙프라방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풋시(Phu Si)언덕 위의 사원에서 시내를 바라보고 일반에게 공개된 사원 중 가장 오래된 왓 위수나랏(Wat Wisynalat)을 관람하고 바로 옆에 있는 왓 아함(Wat Aham)사원을 돌아서 강가를 산책하고 호텔로 와서 11시 쾅시 폭포로 이동했다. 시내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쾅시 폭포는 석회암 지대의 두 줄기의 폭포가 아름답게 쏟아지고 있었으며 아래쪽 담소에 가득찬 물은 에메랄드 색이었다.

루앙프라방 시내로 와서 1560년에 건립한 황금도시의 사원이란 뜻을 가진 왓 씨엥통(Wat Xieng Thong)은 루왕프라방에서 가장 훌륭한 사원으로 황금색 지붕이 눈에 띄었다. 부처님의 일생을 금색 벽화로 표현한 왓 마이(Wat Mai)사원은 라오스 최고의 승려가 거주하는 곳이며 순금으로 높이 83cm, 무게 50kg인 파방(Phabang)이 박물관으로 옮기기 전 안치됐던 곳이다. 왕궁박물관은 라오스 마지막 왕조의 생활상과 란쌍 왕조의 유물과 종교유물을 전시하는데, 가장 큰 보물은 10세기 이전 실론(스리랑카)에서 만들어져 앙코르왕국에 보관하던 불상을 11세기 크메르의 공주와 결혼한 파움(FA Gnoum)왕이 라오스로 가져왔다. 1779년 시암에 빼았겼으나 1839년 다시 반환이 된 라오스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불상이 바로 파방 불상이다.
전시한 유물과 비운의 왕조를 관람하고 메콩강에 손을 씻으면서 강압에 쫓겨 500리 밖에 살고 현재 살고 있는 왕족들의 원한서린 삶을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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