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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계2015.04] Special Interview-문성원색

_인터뷰_/Special Interview

by 월간인쇄계 2015. 6. 12.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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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6일 열린 제53회 대한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연합회 정기총회에서는 뜻깊은 수상 순서가 진행되었다.

한 평생을 인쇄업계에 종사하며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문성원색 김재민 회장과 성문인쇄사 고문환 대표에게 특별 공로상이 수여된 것이다.

특히 1925년 생으로 우리 인쇄업계의 1세대이면서 올해 91세의 고령에도 항상 건강한 모습으로 인쇄인들의 모임에 참석하면서 업계 후배들에게 귀감을 보여주고 있는 김재민 회장의 수상에 이날 참석한 많은 인쇄인들이 큰 박수를 보냈다.

일제시대가 한창이던 1925년에 태어나 6·25 전쟁과 이승만 정권부터 전두환 정권까지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살아오면서 대한민국 인쇄인 1세대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 온 김재민 회장에게 인터뷰를 통해 전해 들은 그가 살아 온 인생은 어렵게 현대사를 살아오면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일궈낸 우리 부모님들의 삶이었기에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었으며 어려운 시기 우리 인쇄업계의 기반을 잘 다져온 1세대 인쇄인들에게 절로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하게 되었다.



성실과 노력으로 헤쳐 온 일제시대와 해방, 6.25 전쟁까지

김재민 회장의 고향은 강원도 이북의 임진강 상류 인근으로 갈산공립보통학교(葛山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인천으로 건너와 인천상업보습학교(仁川商業補習學校) 3년을 수료하는 것으로 학력을 마무리하게 된다. 하지만 김 회장의 성실함을 눈여겨 본 학교 교사의 소개로 조선식량영단에 취업하게 되고, 해방과 함께 대한식량공사 주사로 발령받지만 회사 해산으로 퇴직한 후에 50년 3월, 지인의 소개로 육군조병창에 취직하게 된다.

이전까지 주로 사무직을 담당했던 김 회장은 육군조병창의 사정 때문에 화약 포장공장의 현장에 들어가게 되지만 엉망으로 이뤄지고 있던 생산보고서류 정리 업무를 자청하게 되어 체계적으로 육군조병창의 생산보고서를 바꿔나가고 업무 능력을 인정받게 된다.

1개월이 지나 본부 보급과에서 근무를 시작한 김 회장은 6.25 전쟁을 겪게 되고 부산 육군조병창에 근무하면서는 현지 탄환공장을 설립하는데 크게 기여하게 된다.

이렇게 우리 현대사의 굴곡을 직접 부딪쳐 온 김 회장은 “너무나 힘든 시련들이 많이 있었지만 항상 성실하게 노력하는 자세를 유지했기 때문에 인정받을 수 있었고 이러한 경험들은 이후 인쇄인으로서의 삶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된다”고 회고했다.  


1961년, 인쇄인으로의 첫 시작

부산 육군조병창에서 오랜 근무를 바탕으로 탄환공장 설립에도 크게 기여한 김재민 회장은 1961년 하이델베르그 인쇄기 국내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던 친척의 요청으로 ㈜새한인쇄공사에 관리직으로 입사하게 되고, 전무이사까지 승진한 뒤에는 계양인쇄가 설립되면서 대표이사로 취임하게 된다. 이후 1971년 문성원색을 직접 설립, 대표로 취임한 김재민 회장은 1996년 김국진 대표가 39세로 사장에 취임하기까지 회사의 전체 업무를 관장하고, 대표자리를 물려 준 이후에도 2007년 83세까지 김국진 대표가 회사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회사의 은행과 세무업무를 돕다가 현업에서 은퇴하게 된다.

1970년대 국내 인쇄업계를 이끌던 굴지의 기업들이 현재는 이름만 남았음에도 2세대 김국진 대표가 회사를 잘 이끌어 주어 오늘 날과 같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시한 김재민 회장은 이제 문성원색 김민수 실장과 같은 3세대 인쇄인들이 어려운 지금의 인쇄업계를 다시 한번 도약의 길로 이끌어 주길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치열한 연구와 노력, 청와대 인쇄물의 시작

새한인쇄공사 시절부터 청와대를 드나들면서 인쇄물을 수주해 온 김재민 회장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는 5.16혁명의 주체 세력이었던 광명인쇄와 함께 청와대 인쇄물을 양분하게 된다.

청와대 홍보물 책자는 광명인쇄가, 그 외에 집무실에서 사용하는 양식지와 안내문, 대통령 연하장, 미국에서 오는 사절단과 같은 귀빈이 왔을 때의 식사 메뉴, 연설문 용지, 대통령이 보내는 연말카드 등을 맡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은 71년 문성원색 설립 이후 더욱 본격화 되었으며 전두환 정권 초기까지 20여 년 가까이를 청와대 인쇄물을 작업하고 72년 문을 연 롯데호텔에서 사용하는 고급 인쇄물로 거래처를 확장하게 된다.

청와대 16절 기안용지의 내용을 적는 공간의 테두리 여백을 5㎜ 이내로 변경해서 낭비를 줄이라고 직접 지시한 일화를 들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검소함을 소개했던 김재민 회장은 대통령이 보내는 연하장 디자인을 직접 작업했던 일화와 함께 지금까지도 청와대와 대통령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사용되고 있는 봉황 무늬의 디자인을 위해서 도안사와 함께 동물원을 찾아 봉황 사진을 수 백 여장 촬영한 뒤에 수천 여 가지의 도안을 만들어 완성했던 것 등 그 당시 치열하게 노력하고 연구했던 일화들을 들려주었다.


기술적 융합을 통해 인쇄만이 제작할 수 있는 상품을 선보여야

장기 침체를 겪고 있는 인쇄업계를 떠받치고 있는 후배들에게 김재민 회장은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겼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조그만 마스터 인쇄기 하나만 가지고도 회사를 운영하고 가족을 꾸릴 수 있었지만 이젠 전혀 판도가 달라졌어요. 편집 디자인 프로그램이 대중화되고 상대적으로 구동하기 쉬운 디지털인쇄기와 복합기를 가지고도 소량 카탈로그를 제작하고 있기 때문에 8~90년대 만큼의 수익을 기대하긴 힘들어졌습니다. 결국 인쇄가 급격히 사양화되진 않겠지만 얼만큼 첨단기술과 융합해서 새로운 상품을 선보이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또한 경비를 절감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겠죠. 모쪼록 우리 후배 인쇄인들이 이전의 호황기처럼 많은 수익을 거둘 것이라는 욕심은 부리지 말고, 내실을 기할 수 있길 바랍니다. 좀 더 독특하고 남들이 잘 못하는 특수한 상품과 시장을 만들어 가면서 말이죠.”


 


大韓民國 印刷人 1世代라는 긍지와 자부심

최근 치뤄진 서울인쇄조합 선거에 대해서도 김재민 회장은 따끔한 조언을 덧붙였다.

“이제 인쇄관련단체의 수장을 모시는데 과열된 선거는 그만하도록 하고 될 수 있으면 업계의 중지를 하나로 모아서 추대로 하도록 해서, 서로 대립하는 구도 보다는 손을 잡고 힘을 모을 수 있는 그림을 그려가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90세가 넘은 지금까지 우리 대한민국 인쇄인 1세대라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살아가고 있는 만큼, 이제 인쇄관련단체의 수장 여러분들도 함께 의견을 잘 모으고 많은 조언에 귀 기울여서 2세대, 3세대 인쇄인들이 더 큰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길 바랍니다.”

 

인쇄를 통해 더 큰 도약을 꿈꾸고 있는 3세대

이날 인터뷰에 함께 자리한 김민수 실장은 김재민 회장과 김국진 대표에 이어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인쇄인 3세대이다. 일찍이 가업을 잇기 위해 런던 컬리지 오브 커뮤니케이션(London College of Communication)으로 유학해서 전공을 비즈니스, 부전공을 인쇄 미디어로 학업을 마치고 현재 문성원색 모바일 R&D센터를 이끌어 가고 있다.

“70년대 회장님이 회사를 경영하시면서 청와대와 롯데호텔 등의 까다로운 인쇄물을 작업해 오신 것이 지금 LG화학 인테리어 벽지 샘플북과 롯데호텔의 고급 레스토랑의 메뉴판 등 제작도 어렵고 검수가 까다로운 인쇄물을 주로 작업하고 있는 문성원색의 든든한 기술적 노하우로 축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인쇄산업이 밝은 전망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인쇄인 3세대로 긍지를 가지고 모바일과 인쇄를 결합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라고 자신감을 피력한 김민수 실장을 통해 새롭게 도약해 나갈 문성원색의 또 다른 모습을 기대해 본다.


91세 김재민 회장의 건강비결

70년대 tbc에서 방송되던 ‘장수만세’라는 프로그램이 부활하게 되면 가장 먼저 섭외리스트에 오를 정도로 올해 91세(1925년 생)를 맞은 김재민 회장은 매주 3건 이상의 저녁 일정을 소화하고 신도라이온스클럽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데도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김 회장이 꼽은 스스로의 건강 비결은 일단 잠을 일정시간 이상 푹 자고, 음식도 가리지 않고 두루 먹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업에서 물러 난 뒤에도 지속적으로 인쇄인 관련 모임에 참석해서 지인들과 정담을 나누고 라이온스클럽에 출석하면서 봉사활동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꼽았다. 즉 지속적으로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얻는 활력이 건강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문성원색 김재민(金在敏) 회장 약력


1925년 1월 6일 출생

1939년 3월 갈산공립보통학교(葛山公立普通學校) 졸업

1942년 3월 인천상업보습학교(仁川商業補習學校) 3년 수료    

1943년 4월 조선식량영단인천사무소(朝鮮食糧營團仁川事務所) 근무    

1945년 9월 8.15 해방과 동시 퇴직

1946년 3월 대한식량공사(大韓食糧公社) 주사(主事) 임명

1949년 11월  동사해산(同社解散)으로 인해 퇴직

1950년 3월 육군병기공창(陸軍兵器工廠) 문관 임명

1955년 4월 국방부과학연구소(國防部科學硏究所) 전속(轉屬)

1958년 1월 육군조병창전속(陸軍造兵廠 轉屬)과 동시 문관(文官) 임명

1961년 3월 동(同) 가정사정(家庭事情)에 의하여 사임(辭任)

1961년 5월 주식회사 새한인쇄공사 입사

1961년 10월 동사(同社) 상무취제역(常務取締役) 취임

1962년 11월 동사(同社) 전무(專務)로 승임(昇任)

1965년 10월 동사(同社) 사임(辭任)

1965년 11월 주식회사 계양인쇄사(啓洋印刷社) 대표이사 취임

1971년 4월 문성원색인쇄사(文星原色印刷社) 설립. 대표 취임

1972년 2월 22일 재무부장관 표창장 수여(제3339호)

2015년 2월 대한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연합회 공로상 수상 


취재_글_안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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