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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계2020.03] 이시노리 토크 - 루이비통의 ‘트래블 북 서울’을 말하다

_인쇄업계관련_/세미나&컨퍼런스

by 월간인쇄계 2020. 5. 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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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0일, 서울책보고에서는 다소 특별한 출판 행사가 개최되었다. 총 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본인들이 직접 구석 구석을 돌아 보고 경험한 서울 여행담을 한 권의 그림책으로 담아 낸 이시노리라는 듀오 아티스트들이 초대되어 국내 작가 및 독자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진 것이다. 이 프랑스 출신의 듀오 아티스트들은 이태리 루이비통의 제작 의뢰를 받아 지난 2014년부터 2017년 사이 네 차례의 서울 방문을 통해 작년 ‘트래블 북 서울’이라는 여행 서적을 완성했다. 이러한 책을 제작하기까지 이 듀오는 광범위하면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으며, 일러스트레이션과 그래픽 디자인을 중심으로 한 멋진 아트북을 만들어 왔고, 전시회와 교육에 투자하며 독립 출판 작가로서 개인 및 공동 작품을 만들어 왔다. 이들이 다른 작가들과 구별된 점이 있다면, 직접 실크스크린 인쇄와 석판 인쇄 기법을 섭렵, 자신들만의 색상과 기술을 제작에 녹여 아트북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본인들의 인쇄 기법 뿐만 아니라 이웃하고 있는 오프셋 인쇄사와의 협업을 통해 이시노리는 자신들만의 예술적 색체와 세계를 보다 구체적이면서도 즐겁게 표현해 내고 있다. 2시간 남짓 진행된 출판 행사를 무대로 이시노리의 두 주인공인 라파엘 위르빌레와 마유미 오테로는 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들의 무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써 내려온 책들에 대해, 그리고 그들을 찾아 조금은 색다른 시간을 갖게 된 독자들과 함께 이야기 꽃을 피웠다.  



커플, 듀오 아티스트의 이시노리 프로젝트

스페인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마유미 오테로, 그리고 전형적인 프랑스인인 라파엘 위르빌레 커플은 ‘이시노리 프로젝트’를 함께 운영하며 출판 및 인쇄, 그리고 워크샵을 기반으로 아동과 어른들을 위한 예술교육을 활발히 전개해 나가고 있는 젊은 창작자들이다. 언뜻 듣기엔 이시노리라는 단어가 일본어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으나 위르빌레씨는 아무 의미도 없는 단어라고 전했다. 특별한 뜻이 없기에 이들의 프로젝트는 그 경계가 없고 그 창작에 있어 무한 장르의 다양성을 추구한다. 프랑스 출신의 북 아티스트로 이들 커플은 디자인 스튜디오를 함께 운영하며 일러스트레이션 및 그래픽 디자인이너로 르몽드, 뉴욕타임즈, 와이어드, 라비에, 포브스 등에 그들 작품이 수록, 소개되었으며, RMN(Réunion des Musées Nationaux)와 루이비통 등 유수한 기관 및 업체들과 그림책부터 아티스트북, 그리고 팝업북에 이르기까지 제작하며 일해왔다. 학창시절에는 아동 도서 제작에 있어 그 재능을 인정받지 못해 주위사람들로부터 절대로 아동 도서만은 만들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오늘날 이들 듀오는 아동 도서 뿐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아동 도서까지도 훌륭히 제작, 호평을 받고 있다. 



스스로의 길을 찾기 위한 독립 출판 

프랑스 동부에 위치한 스트라스부르라는 장식 미술 대학에서 공부하던 시절 이들은 수작업으로 책을 만들어 학교 밖에서 출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이시노리 독립 출판의 시작이 되었다. 학창시절 모든 것이 혼재되어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작업을 하면 할수록 길을 잃어 가고 있는 것 같다’는 질문으로 교수에게 물었지만 답은 ‘모든 사람들이 다 길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이들은 본인들의 길을 스스로 찾기 위해 학교 밖으로 나와 밤에는 그림을 그리고 낮에는 인쇄를 하며 책을 만들었고, 폭력적이지만 자유로운 형태로 펑크의 느낌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책 안에 담았다. 펑크스럽기 위해 여러가지를 시도했고, 2회에 걸쳐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상을 수상한 적이 있지만 본인들 생각에는 아직도 사람들에게 그리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계속해 그들만의 길을 찾는 시도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35개의 수작업 책을 제작했는데, 지난 10년 동안 13~14개의 책을 수작업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위르빌레씨는 수학 선생님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과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이러한 성향은 그의 아트북에 이미지화 되었다. 마유미의 아버지는 스페인인으로 자유로움을 갖고 있는 동시에 이를 잘 어우러지게 만들어 완성하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오테로씨는 아버지의 그러한 재주에 어머니 나라인 일본의 민화를 그녀만의 감각으로 다듬어 디테일 하면서도 세련되게 그림으로 담아 내고 있다. 이 두 아티스트들의 조화는 일본인들이 보기엔 유럽풍, 그리고 유럽인들이 보기엔 일본풍의 일러스트들로 완성되어 수 십 권에 달하는 아트북으로 탄생했다.



실크스크린과 석판 인쇄을 기반으로 한 아트북 제작 

이시노리 듀오는 디자이너이자 시각 예술가이기도 하지만 작업실 지하에 실크스크린 인쇄와 석판 인쇄가 가능한 아틀리에를 운영하며, 직접 인쇄를 하고 있는 인쇄인이기도 하다. 30여 권 이상 수작업으로 제작된 책들은 그들이 직접 선별한 색과 인쇄 방식을 이용해 출판물로 만들어진 것이다. 직접 글을 쓰고, 직접 그림을 그리고, 또 직접 인쇄를 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색이 입혀진 책을 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판화 거장들의 현대적 계승자’로 불리기도 한다. 

팝업북을 만들게 된 계기 또한 아무도 만들지 못하는 복잡한 구조로 정말 특이한 책을 만들고 싶어서였다고 위르빌레씨는 말했다. 이시노리에서 만들어진 팝업북은 복잡한 구조도 구조지만 정말 그 한권 한권이 정교하면서도 섬세하게 만들어졌다. 인쇄 뿐만 아니라 후가공까지도 그들의 손을 통해 아트북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인쇄에 대한 이들의 관심은 실크스크린 인쇄와 석판 인쇄를 넘어 오프셋 인쇄 등의 여러 방식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고 한다. 같은 동네 인쇄사를 운영하는 형제분들과 친분을 쌓으며 오프셋 인쇄를 접목한 아트북을 출판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이 원하는 색 재현을 더욱 잘 하기 위해 컬러매니지먼트에 대한 관심도 갖게 되었다. 전문적인 인쇄인 저리 가라 할 만큼 이들은 이시노리의 색감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인쇄 기술과 공정을 이해하고 익히는데 공을 들이고 있으며, 이는 또 다른 장르의 창작물을 이끌어 내고 있다고 한다.  



루이비통의 트래블 북 서울

지금으로부터 9년 전 이시노리는 루이비통으로부터 트래블 북 제작을 제안 받았다. 루이비통은 전 세계 각 대표적인 도시의 여행 서적을 만들고 있는데 이시노리의 실험적인 그림책에 주목하게 되었으며, 이 여행 도서 시리즈를 이들과 함께 만들고 싶다는 제의였다. 위르빌레씨와 오테로씨에게는 가고 싶은 나라의 도시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졌으며, 이들은 서울을 선택했다. 사실, 루이비통에서는 그림으로 담기 어려운 도시를 선택했다며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그들 말대로 서울은 한 권의 그림책으로 담아내기에는 어려운 도시였다고 오테로씨는 말했다. 도시 전체가 어느 한 특징을 꼭 꼬집어 표현하기 어려웠으며, 현대적인 모습 바로 옆엔, 전통적인, 그리고,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순간 이동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도시였다고 위르빌레씨는 말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약 8개월 여 동안 위르빌레씨와 오테로씨가 서울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보고 느낀 이미지는 ‘트래블 북 서울’이란 책으로 완성 되었다. 여기에는 조선 후기 궁중과 상류계층에서 크게 유행한 그림으로 책은 물론 각종 골동품과 문방구, 꽃 등이 묘사된 책거리를 모티브로 한 그림을 비롯해 충무로 거리의 인쇄사, 을지로의 연탄구이 고깃집, 찜질방, 연남동 연트리의 모습, 탈춤, 광화문 광장의 시위대 모습, 덕수궁 앞의 수문 교대식 등 다양한 모습들이 그들만의 시선이 담긴 서울의 풍경으로 그려졌다. 이렇게 그려진 스케치는 이시노리의 색깔과 그림으로 섬세히 재구성되었으며, 160페이지에 달하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구글 렌즈(Google Lens) 접목으로 생동감 넘치는 서적 완성 

루이비통은 이시노리의 ‘트래블 북 서울’에 담긴 몇몇 그림들을 구글과의 협업을 통해 서적과 문학 분야에 구글 렌즈를 적용한 세계 최초의 사례로 재탄생 시켰다. 스마트폰으로 구글 렌즈 앱을 실행한 뒤 트래블 북 서울의 표지이기도 한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을 비롯해 불고기, 프랭크 게리의 루이비통 메종 서울 등 선별된 작품 페이지로 카메라 렌즈를 이동하면 이시노리가 그린 트래블 북 곳 서울의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즐길 수 있도록 제작한 것이다. 단순한 그림책을 넘어서 앱을 접목시켜 보다 생동감 있는 서울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다. 이러한 기술적 접목은 몰입형 디지털 콘텐츠를 종이 위의 실제 이미지와 훌륭히 연결시켜, 정적인 느낌의 그림을 동적인 느낌의 영상으로 재 표현 하는데 성공했다.  



실험적 출판물을 통한 새로운 길 개척 

이시노리만의, 세상 누구의 창작물과도 차별되어 구분되어지는 특유의 실험적 출판물을 만들어내는 독립 출판 작가들로서, 위르빌레씨와 오테로씨는 저마다의 악기를 연주하며 결국엔 조화로운 앙상블을 이루는 듀오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장인 정신에 걸맞은 세심함으로, 작가 특유의 개성 있는 필체로, 그리고 누구보다 멋진 상상력을 한껏 발휘한 그림책으로 오브제로서의 책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만들어 가는 아동 도서 또한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은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 하에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표현해 그림과 같이 책으로 엮고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 보다 이해력이 떨어지지 않으며, 다만 더 예민하고 섬세한 감정을 갖고 있어 이에 걸맞는 언어와 표현 방식으로 잘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 위르빌레씨의 말이다. 

이들이 표현하는 아트가, 그리고 그 책의 장르가 무엇이든, 이시노리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길을 잃은 혼돈이 아닌 새로운 세계를 그려 보이고 있다.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스크린 인쇄 기법과 같이 서로 다른 색깔을 하나씩 하나씩 겹쳐 그려 냄으로, 단색으론 표현하기 힘들지만 그 색을 더해가며 완성된 이미지를 만들어 가듯 새로운 길을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이시노리는 앞으로도 그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펼쳐 보이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갈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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