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계2022.12] 다양한 글꼴이 함께 어우러지는 사회가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가 추구하는 방향성 -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 구모아 책임연구원
한글꼴의 역사적 줄기를 이으며 디지털 시대의 기준이 되는 ‘글꼴’이라는 문장에서부터, 마루 프로젝트는 거대한 작업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4년이라는 기간 동안 6만여 명의 사용자 의견을 반영했다는 점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함께 참여하신 글꼴 디자이너 입장에서 프로젝트에 대한 소회도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마루 프로젝트는 제가 안그라픽스에서 처음 맡은 작업이었습니다. 2018년에 시작해서 마무리까지 프로젝트의 전체 진행을 담당했는데, 작업 기간 동안 중요한 발자취를 남길 수 있는 프로젝트가 될 수 있도록 잘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만큼 해야 할 일도 많았고, 아직 완전히 끝났다기보다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들을 만들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사회적으로 한글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는데, 2000년대 초반부터 한글 글꼴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것 같아요. 그래서 전용 글꼴이나 무료 글꼴, 상업 글꼴에 대한 관심이 디자인 분야 뿐 아니라 대중적으로 확대되었는데, 중요한 계기가 된 프로젝트가 나눔글꼴인 것 같아요.
2008년부터 네이버와 네이버문화재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한글한글 아름답게’는 10년 이상 꾸준하게 성공적으로 이어져 왔던 프로젝트로, 정기적으로 무료 글꼴을 만드는 것을 넘어 뚜렷한 발자취를 남길 수 있도록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시키자는 것이 마루 프로젝트의 가장 큰 핵심이었어요.
사실 지면에 비해서 디지털 공간에서는 생각보다 글꼴을 사용하는데 제약이 많이 있습니다. 사용하는 OS부터 해외 기반이다 보니까, 한글에 적합한 타이포그래피 환경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마침 네이버가 온라인 세상에 한글로 표현된 생각과 정보가 많아지길 바라며 시작한 프로젝트를 통해, 계속 발전시켜 오면서 글꼴까지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지점을 포착해서 디지털 시대에서의 한글 글꼴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을 하게 됐던 거죠.
6만여 명의 많은 사용자들과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피드백을 주고 받는 과정은 창작자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큰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드백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항상 의견은 엇갈리게 되고 모자란 부분들을 많이 얘기해 주시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일이죠. 하지만 싫지만은 않았어요. 오히려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죠. 생각보다 다들 세세한 부분을 짚어서 설명해 주시고, 뭔가 부족하고 필요한 걸 얘기해 주셨기 때문에 이런 사용자들의 피드백이 데이터로 모여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피드백 과정이 재밌기도 했어요. 잘 만들어줘서 고맙다 또는 더 확장을 해달라와 같은 응원하는 댓글도 많아서 되게 뿌듯했구요. 마루 프로젝트의 중요성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시는구나, 글꼴 디자인이 아주 마이너하지만은 않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마루 부리를 디자인 하신 노은유 디자이너께서 사용자와 전문가의 많은 의견을 수용하는데 아주 유연하게 받아들여주셔서 감사했어요.
오랜 프로젝트 기간 동안 외부 간섭 같은 힘들었던 점들은 없었는지요.
마루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회의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진행하는 4년 동안 못해도 두 달에 한 번씩은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와 네이버, 네이버문화재단이 계속 만나면서 함께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그 회의 자리에서 뭔가 중요한 이슈들은 많이 정리가 됐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글자의 두께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에 대한 부분도 2차, 3차 회의를 거치고 계속 조율을 해나가면서 결정을 하고 그 와중에서도 회의 때마다 다른 전문가분들을 두, 세 분씩 모셔서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었고, 그걸 수용하면서 다 같이 결정을 하다 보니까 어떤 불필요한 간섭이나 그런 것들은 크게 없었던 것 같아요.
힘들었던 것은, 마루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프로젝트의 범위가 넓고 한글 글꼴과 디지털, 사용자까지 다 엮여 있는 일이다보니, 캠페인성으로 계속 소통을 하면서 사용자들한테 진행 내용을 알려줘야 되는데 전문가들과 디자인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 설명을 해야 할 때 그 간극을 메우는 게 오히려 좀 어려웠던 부분 같아요.
최근 폰트협회 세미나에서 ‘활자를 그릴 때는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고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랜 경력을 가진 글꼴 디자이너 입장에서 시대를 글꼴에 담는다면 어떤 특징들을 가질 수 있는지, 이를 가장 잘 반영한 서체는 어떤 것들이 있다고 보시는지 말씀 부탁 드립니다.
글꼴 디자인할 때 시대성을 봐야 된다는 것을 책에서 보고, 계속 일을 하면서 선배님들과 소통하면서 그런 생각들을 더 갖게 됐는데, 이게 생각보다 엄청 중요하더라고요. 시대의 창을 담아내는, 그것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공간인 것 같아요.
조금 전문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하나의 글자가 있을 때 이 글자가 어떤 크기를 가지고, 닿자(닿소리 글자)와 홀자(홀소리 글자) 사이에 공간이 어떻고, 구조가 어떻고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잖아요. 한글 디자인에서는 그것 자체가 이 시대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제가 처음 글꼴 디자인을 시작했을 때의 미감과 지금의 미감은 미세하게 다르거든요. 아주 미세하지만 작은 차이를 계속 보면서 형태로 시대상을 담을 수 있지만 공간에서도 시대적 미감을 발견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지금의 시대상인 것 같아요. 요즘 보면 레트로한 디자인 작업물과 레터링, 글꼴이 많이 보이는데, 글자의 레트로한 표현에 공감을 일으켰던 사례가 2010년대 후반부터 나오기 시작한 것 같아요.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 이전에는 이런 레트로한 감성이라든지 산업시대 초기 때의 모습들, 이런 한국의 모습들을 촌스럽다고 여겼었고, 그때는 우리가 못 살아서 그랬다는 분위기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고 하면, 지금은 오히려 역으로 ‘이것이 한국의 문화다’라고 정의하고 잘 활용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런 것들은 지금 글자에도 많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레트로라는 게 단순히 그냥 레트로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지금 시대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다시 시각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들이 요즘 많이 들어요.
저희 연구소에서는 최정호 디자이너가 남긴 작업들을 다시 분석하고 연구해서 요즘 시대에 맞게 설계하여 다시 발표하는 작업을 많이 하는데, 초특태고딕이라는 글꼴이 당시 시대를 굉장히 잘 담았던 글꼴이고 최정호체는 그 시대를 조금 앞섰다고 생각해요.
시대를 앞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앞에서 제가 그 시대상을 담을 때 공간감 같은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최정호체는 원도가 그려졌던 당시(1988년)에 출시되지 못했고 2017년 저희가 디지털 글꼴로 만들기 전까진 원도로만 존재했던 글꼴 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시대보다 살짝 앞서 있는 공간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선생님이 활동하셨던 80년대 후반은 세로 쓰기와 가로 쓰기가 혼용하던 시대라서 신문에서는 세로 쓰기를, 단행본에서는 가로 쓰기와 세로 쓰기 둘 다 쓰면서 점차 가로 쓰기로 변하던 시점이고, 한글과 한자를 같이 쓰던 시대였거든요.
그래서 글자의 공간 자체가 삼각 구도라고 하는 전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게 보통인데 최정호체는 완전한 가로쓰기로 와야만 볼 수 있는 공간 구조들이 보여요. 그런 면에서 약간은 시대를 앞서 갔다는 생각이 들죠.
이 외에 지금 사용하는 글꼴은 아니지만 1950년대에 설계한 교과서 전용 글꼴이 있습니다.
‘대교체’라고 대한교과서(현 미래엔)에서 18여년을 개발하신 걸로 압니다. 이 글꼴을 실제 교과서에 사용했었고, 비슷한 시기에 또다른 교과서 전용 글꼴인 국정교과서체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 두 교과서 글꼴이 그 시대를 여러모로 잘 담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교과서를 인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목적성도 그렇고 공간이나 획의 표현 뿐 아니라 당시 가로쓰기를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한 곳이 교과서였기 때문에 글꼴의 구조가 가로쓰기를 고려해 설계된 점도 시대를 잘 담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교체는 크게 세 차례에 걸쳐 개각을 했었는데 단계마다 가로쓰기 균형에 더욱 가까워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글과 점자를 결합한 ‘한점모아체’를 시작으로 다수의 글꼴을 개발하셨는데요, ‘한점모아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한점모아체는 미술 학사 졸업 전시 작품이었어요.
당시 졸업 작품을 준비하면서 주제에 대해서 고민을 오래 했고, 어떤 디자이너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죠. 1학년 때부터 여러 가지를 해 보면서 글자나 문자 그리고 편집, 이런 타이포그라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그렇게 계속 범위를 좁혀갔던 것 같아요. 어떤 디자인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자문했을 때 본문 글꼴이 대부분 획일화되어 있다는 것이 당시에는 좀 이해가 안 됐었고, 거기에 대한 작업을 준비를 하다가 교수님으로부터 폰트를 만들어 보라는 권유를 받았어요.
좀 갑작스럽긴 했지만, 글꼴은 하나의 시스템을 만드는 작업이라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1만 자 정도 되는 글자들 안에서의 시각적인 시스템들이 계속 맞물려 돌아가는 게 핵심적인 특징이고 저는 그게 매우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규칙과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는 글꼴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각 디자이너 입장에서 글자는 소통할 수 있는 도구라는게 저에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는 뭔가 기록되고 남겨진다는 점이 더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는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저희 아버지가 다리가 불편하셨는데 신체적 불편과 소통이 어려운 문자를 떠올리다 보니 점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것도 분명히 문자인데 왜 내가 알고 있는 시스템과 이렇게 다를까. 그럼 이게 한글 시스템과 뭔가 맞물릴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도 했었고,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 할 때 점자로 인쇄가 된 걸 본 적이 있었거든요. 종이에 한글이 인쇄되어 있는데 그 위에 보이지 않는 그냥 느낌으로 뭔가 올록볼록 되어 있더라고요. 이런 방식의 디자인은 여러가지를 고려하지 않고 그냥 합쳐놓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어차피 점자도 문자가 시스템화 된 거니까, 둘 다 알아볼 수 있게 뭔가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출발한 작업이었습니다. 더 발전시키고 싶었는데 결국 해결하지 못한 부분이 서로 다른 두 문자 시스템을 결합하는 일이었어요.
점자가 가지는 시스템과 한글이 가지는 그런 공간, 시각적인 시스템이 맞물리기가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어느 한쪽은 좀 많이 포기를 해야 되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작업의 마무리는 한글을 좀 못 알아보더라도 점자가 어떤 글자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수준으로만 만들었던 게 한점모아체였어요.
사실 실용화까지 하고 싶었지만 축약되는 부분을 시각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못 찾아서 실용화까지는 하지 못했어요.
저시력자들을 글자의 대략적 윤곽을 보고 읽는게 가능하다고 하고, 점자는 이를 도와주는 보조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해요. 한점모아체는 이런 상황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거기까지는 못 갔던 것이 아쉬워요. 점자와 한글을 결합했을 때에 이런 그래픽적인 느낌이 날 수 있다 정도로 만족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다시 설계를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로 남아 있어요. 언젠가 다시 작업을 한다면 지금 결과물과는 다르게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여러 곳의 대학과 교육 기관에서 학생들과 함께 하고 계신데요, 어떤 것들을 강조하시는지, 요즘 학생들에게 흥미롭게 보고 계신 부분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TI)에서는 수업을 세 학기 정도를 진행했고, 디자인 학교라는 곳에서는 2, 3년째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박 3일간 진행하는 디자인 캠프에서 멘토를 맡기도 하고 홍대를 비롯한 대학에서는 특강을 했습니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TI)에서 제가 하는 수업은 과정으로 보면 석사 과정에 계신 분들이 듣는 수업입니다. 한 학기 내내 진행되는 수업이다보니 기본부터 마무리까지 그리고 글자 디자인 외에도 이 작업 전체를 기록할 수 있는 기록지까지 해서 마무리를 시켰었고, 대학원 수업 때 글자를 대하는 그런 뭔가 흥미가 생긴 분들 몇 분이 지금 저희 연구소에서 같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글꼴 한 벌을 완성할 때까지 거의 1년 넘게 따로 코멘트를 해주기도 하고, 학생에 따라서 많이 차등을 두고 있습니다. 워크숍이나 특강에서는 흥미 위주로 한글이 재미있다, 글자 디자인을 할 만하다는 걸 강조하죠. 생각보다 제 수업에 오시는 분들은 글자가 궁금한데 경험을 안 해보신 분들이 많이 왔어요. 그래서 최대한 엄청 재미있고, 쉽게 놀 수 있게 하는 편입니다.
끈기 있게 하고 싶은 분들한테는 계속 용기를 많이 심어주죠. 지치지 않게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심어주고 글꼴에 관심있는 분들이 많아지면 저희한테도 좋은 거니까요. 그런 분들한테는 글자가 재미있다는 걸 알려주는 게 저희들의 중요한 역할인 것 같아요.
서점에 나와 있는 출판물들을 보면 디자인은 독특할 수 있어도, 본문 글꼴의 다양성은 크지 않다고 보여집니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보는 일반적인 출판물들의 본문 서체들이 잘 바뀌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래도 이전보다는 확실히 다양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서점에서 여러 출판물들의 표지를 보는 걸 좋아합니다. 그걸 보면 지금 유행하는 글꼴들을 볼 수 있구요. 예전에는 영화 포스터에서도 기존 글꼴을 조금만 바꿔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요즘에는 글꼴 자체를 온전히 쓰거나 이와 비슷한 느낌의 새로운 레터링도 많이 하는 걸 보게 됩니다. 그만큼 레터링 작업이 많이 일반화 되었다는 거죠.
본문 글꼴의 다양성은 시대감각이 중요한데요, 사람들이 낯선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죠.
특히 출판 인쇄의 본문에서는 낯선 것들을 아주 천천히, 그리고 점진적으로 시간을 오래 들여서 바뀌어지는 게 본문 글꼴인 것 같아요.
SM 글꼴들이 여전히 많이 쓰이는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고, 그래도 요즘에는 디자인 서적이 아니어도 시집이라든가 에세이라든가, 또 독립 출판에서 낯선 본문 글꼴을 사용하는 시도를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잘 만들어졌다는 글꼴들도 낯선 느낌이 있으면 눈이 불편한 느낌이 있게 되는데, 그럴수록 더 많은 시도들이 있어야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환기 되면서 변화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벽이 높다고 해서 계속 이 벽에 맞추기만 하면 계속 똑같이 가는 거고, 뭔가 과감하게 깨 본다든지 아니면 개성이 뚜렷한 글꼴은 최대한 그리드를 안정적으로 사용한다든지, 당김과 밀림, 서로 주고받는 식으로 조율을 해가면서 판짜기를 해 나가면 조금 더 다양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글꼴 디자이너 입장에서 새로운 글꼴을 적용해 보고 싶은 편집 디자이너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글꼴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본문 글꼴은 중간 지점을 잘 잡은 최정호체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전통적인 글꼴이 가지고 있는 미감과 더불어 약간 낯설고 미묘한 느낌이 있거든요.
보수적인 입장에서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많은 출판사 관계자분들이 한번 시도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제목으로는 초특태고딕을 권해드립니다. 초특태고딕을 제목으로, 최정호체를 본문으로 했을 때 그 조화도 나쁘지 않고요.
또한 Adobe 클라우드 서비스를 유료로 사용하시는 분들이 사용할 수 있는 AG 최정호 스크린은 최정호체와 비슷하지만 이건 스크린용으로 만든 거라서 조금 더 굵기가 굵은 편인데, 요즘 인쇄에서도 사용하는 걸 많이 보게 됩니다. 약간의 굵기가 필요한 경우에는 AG 최정호 스크린도 괜찮아요.
개인적으로 최근 봤던 것 가운데에서는 안삼열 디자이너가 만드신 정인자가 굉장히 괜찮은 것 같아요. 최근 공공디자인을 주제로 열린 ‘공공디자인 페스티벌 2022. 길몸삶터’ 전시에서 주민등록 등·초본 신청서 같은 서류를 이경수 디자이너가 정인자를 사용해서 굉장히 깔끔하게 편집, 우리 공문서가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걸 보여 줬는데 주민센터에 가고 싶은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최근 디자인 분야 트렌드인 것 같기도 한데 안상수체나 마노체 같은 세벌식 글꼴을 제목 또는 중제목용으로 다시 많이 사용을 하시더라고요. 이게 90년대 느낌을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느낌으로도 많이 쓰이고 있는데, 그 부분이 되게 재미있고 새로웠습니다. 예전에는 촌스럽다고 생각해서 별로 사용되지 않았던 세벌체가 요즘 다시 많이 사용을 하는 걸 보면서 세벌체를 다시 전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점이 근래로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의 장기적인 방향성은 어떻게 설정하고 계십니까.
최정호 디자이너에 대한 연구와 좋은 글꼴을 많이 발표하는 기본 연구 업무와 더불어 장기적으로는 작은 규모의 글꼴 디자이너와 같은 소상공인들이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돕고, 시장에서 그런 다양성을 더 확충할 수 있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 작가분들을 잘 발굴해서 이분들이 글꼴을 판매할 수 있게 도와주고 글자에 대한 보다 세세한 이야기들을 볼 수 있는 장소를 마련을 해 주는 그런 실험적인 작업들도 진행하고 있고, 이렇게 작은 그룹들이 연구소를 통해 시장에서 숨을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연구소의 큰 방향입니다. 앞으로는 그런 일들을 많이 하게 될 것 같고, 꾸준히 하고 싶은 것은 글자에 대한 연구 내용을 계속 발표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글자 관련된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 가고 싶은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바탕이 풍성하고 이야기가 있는 글꼴들이 모여 있는 연구소가 되길 바라는 거죠.
내년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는 교과서 전용 글꼴을 내년에 발표할 예정이며 얼마 전에 개최한 AG 글꼴 컨퍼런스(AGTC)라는 행사와 관련된 자료 정리 작업도 내년까지 이어질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같은 전공에서 조금 더 심화시키기 위한 대학원 공부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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