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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계2023.06] 변화하는 충무로

_인쇄기술정보_/기술기고

by 월간인쇄계 2023. 8. 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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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새와 딱새 

예전에는 직종에 관련없이 직장인 대부분이 정장에 구두를 신고 출근했다. 

그때는 출근 후 오전이면 구두닦이 아저씨들이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구두를 받아 가곤했다. 이들은 황야의 무법자들이었다. 회사의 아무 곳이나 불쑥불쑥 나타나 “닦아요?” 하면서 구두를 낚아채갔다. 이들에게 출입금지 구역이란 없었다. 이들에게 구두를 주고 나면, 슬리퍼를 신은 채 구두가 올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했다. 

언젠가 구두닦이 아저씨에게서 구두닦이 업계의 비밀을 들었다. 그 일은 소위 ‘찍새’와 ‘딱새’로 분업이 이루어지는데, 찍새는 구두를 받아오는 사람들이고 딱새는 구두를 닦는 사람들이었다. 영업직과 생산직이 분리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역할은 찍새라고 했다. 뭐니 뭐니 해도 구두를 잘 모아와야 팀 전체가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영업이 비즈니스의 꽃이라는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인쇄업체에서는 그동안 주로 소위 ‘술상무’가 영업을 담당했다. 대기업 회장님을 친척으로 둔 인쇄사나 혁명동지였던 인쇄사들을 제외하고는 술상무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인쇄업체의 웹사이트가 술상무 역할을 대체하는 시대가 되었다. 누구든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대이다. 고객은 검색 몇 번으로 자신이 원하는 조건의 인쇄업체를 찾을 수 있다. 그렇기에 웹 사이트를 잘 구축한 업체는 고객 유치에 있어 매우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업체의 위치나 좋은 인맥을 갖는 것만큼 웹사이트를 잘 개발하고 알리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비싼 인쇄기에 투자하는 것만큼이나 웹 사이트 개발에도 사활을 걸어야 한다. 

찍새 구축의 어려움 

대부분의 중소 인쇄업체들은 웹사이트를 구축하기가 쉽지 않다. 대형 업체들은 자체 전산 인원을 구성해서 온라인 상에서 인쇄물을 접수하고 합판 제작을 자동화한다. 반면 중소 업체들은 웹사이트 개발을 주로 외주를 통해 구축하지만, 결과는 대부분 만족스럽지 못하다. 지난 20년간의 소프트웨어 용역 사례를 보면 다툼으로 끝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외주 개발사와 개발을 의뢰한 회사간의 다툼이었다. 웹사이트 개발은 수시로 요구사항이 변화하기 마련인데 그럴 때마다 외주 업체에 추가로 개발을 요청해야 해서 그것이 불화의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보통의 개발 의뢰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다음의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 번째는 의뢰인이 개발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을 몰라 계약의 내용을 파악하기 힘든 경우이다. 정확하게 무엇이 가능한지도, 어떤 방식으로 개발을 해야 할지도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계약을 하기 때문이다. 대표의 2세 후계자들, 젊은이들은 좀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건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산업의 변화 때문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문제는 개발 계약 시기와 완료 시점 사이에 외부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이다. 건축의 경우는 건축 계획과 완공 사이에 일의 수행방식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들의 큰 변화는 없다. 몇 년 사이에 철근 건축 방식이나 시멘트로 공사 하는 방식이 다른 방식으로 바뀌는 일도 없다.  이런 이유로 계약의 쌍방이 계약 내용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갖게 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은 상황이 사뭇 다르다. 마치 건축물의 시공계약을 하고 났는데 몇 달 사이에 시멘트를 대신하는 3D 프린팅 공법이 나오고 철근 대신 가격이 더 싸고 견고한 물질이 나오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계약 상식은 아래와 같다.

  1. 계약서에 계약 내용 명시
  2. 계약과 동시에 계약금 지금 
  3. 기간을 정하고 그 기간 내에 개발을 완료하기로 함.
  4. 납품과 동시에 잔금 지급 

소프트웨어 개발 계약도 이런 방식으로 하려 했지만 많은 경우 의뢰인과 개발자 모두 불만족스러워했다. 실패 사례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이를 지칭하는 영어 단어까지 생겼을까. 

Waterfall vs Agile, 즉 폭포수 방식과 기민한 방식이라고 번역해도 될듯하다. 

폭포수(Water Fall) 방식은 계약과 동시에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을 하는 굴뚝산업 시절의 방식이다. 이런 계약은 중간에 어떠한 변화도 허락하지 않는다. 만약 계약 내용대로 이행하지 못할 경우 벌금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소프트웨어개발은 계약이 종료되는 시기에 이르면 그 소프트웨어는 이미 구닥다리 제품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기민한(Agile) 방식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 쌍방이 주기적으로 만나 협의하고 필요할 때마다 개발 목표를 수정해가는 방식이다. 비용도 여러 단계별로 나누어 지불한다. 이는 변화무쌍한 환경에 대응이 가능하게 한다.

인터넷 시대의 나까마  

앞으로 인쇄업체들의 도전은 단순한 웹사이트 구축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충무로에는 구두닦이 업소의 찍새와 딱새의 조합보다 더 무시무시한 집단이 있다. 바로 ‘나까마’라는 집단이다. 이들은 인쇄 장비가 없이도 인쇄 영업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말하자면 같은 회사에 딱새가 없어도 영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소비자들의 필요에 따라 기획, 디자인, 인쇄사, 후가공 업체들을 두루 섭외해서 소비자에게는 최저 가격의 인쇄물을 제공하는 일종의 곡예사들이다. 

이런 현 상황에서 인쇄업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웹 사이트 구축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상에서의 나까마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현재의 웹투프린트(Web2Print)기술로는 명함이나 스티커 등 단순한 작업만을 온라인으로 편집할 수 있지만 앞으로 기술이 좀더 진보하면 복잡한 편집물들까지도 소비자들이 손쉽게 온라인 편집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경쟁은 누가 인터넷상의 나까마, 즉 다양한 솔루션의 제공자가 되는가 하는 싸움이다. 

앞으로는 저자들이 제작하는 출판물은 물론 인터넷에서 자료를 추출하는 형태의 인쇄물 제작도 준비해야 한다. 네이버 블로그, 페이스북, 깃허브 등에서 작성하는 원고들을 출판물들로 변환할 수 있는 다양한 솔루션들 말이다. 과연 그런 것이 가능할까라고 의아해 할지 모르지만 이미 수많은 전자책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출판되고 있다.  이러한 출판물 제작 방식은 의외로 우리에게 가까운 곳에 있다. 

원하는 정보를 웹사이트에서 얻는 방법에는 사람이 직접 접속해서 정보를 얻는 방법과 컴퓨터 프로그램끼리 서로 정보를 주고 받는 방식이 있는데, 후자의 컴퓨터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방식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라는 방식으로 웹사이트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사람이 직접 해당 사이트에 접속하지 않고도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내용물을 받아올 수 있다. 대부분의 사이트에서는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를 일컬어서 API 라고 한다. 

두 번째 방식은 Web Scraping이라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웹사이트의 허락과 무관하게 해당 웹 사이트의 내용을 내 프로그램으로 가져오는 방식이다. 우리가 잠자고 있는 사이에도 매일 구글, 네이버 등등의 검색 엔진들은 전세계 웹 페이지의 내용들을 가지고 가서 자신들의 데이터로 쌓아가고 있다. 이러한 방식 때문에 거대한 투자 없이도 다양한 자료를 불러 오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방식들을 이용하면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인쇄물 시장이 열릴 것이라 생각한다. 

인쇄업계에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은 최근 일어나고 있는 ChatGPT와 AI열풍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우리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출판물들이 저자가 아닌 AI에 의해 가공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ChatGPT에서도 API를 제공하고 있다. 즉, 사람들이 openai.com 웹사이트에 접속하지 않고도 동일한 결과물을 컴퓨터에서 자동으로 불러올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방식의 제 2, 제 3의 서비스들이 매일 하루가 멀다하고 등장하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많은 이들의 대화 주제는 주로 유튜브였는데 지금은 온통 chatGPT와 AI이야기이다. 또 이러한 기술들을 API로 활용하는 서비스들이 매일 나오고 있어 앞으로 어떠한 서비스들이 등장할지 궁금하게 된다. 

이런 새롭게 전개되는 상황은 대형 인쇄업체가 주도하는 현재 환경에서 중소 인쇄업체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준다. 인터넷 상의 도서 출판물 인쇄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장이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충무로 

충무로는 지속적으로 변해왔다. 그리고 충무로 사람들은 항상 첨단을 달려왔던 것 같다. 일반인들이 MS-DOS를 사용할 때 맥을 사용했고 일반인들이 플로피 디스크를 들고 다닐 때 충무로에서는 80G 하드 디스크 들고 다녔다. 일반인들은 통신을 잘 모를 때 충무로 출력업체에서는 웹하드로 대용량 자료들을 주고 받았고 사람들이 PDF를 잘 모를 때 충무로에서는 PDF로 출력물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충무로는 항상 한발 앞서서 기술을 활용해 왔고 변화에 적응하며 달려왔다. 앞으로도 충무로는 시대를 앞서갈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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